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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밀린 월급 받을 길 없나요”

김철수02 2009. 1. 3. 01:05

 

세계일보 | 기사입력 2009.01.02 20:37

 


 

경제한파에 체불 급증… 한 달 새 100억 늘어

읍소·소송 승소해도 사장은 "배째라" 버텨


"막막합니다. 그 돈이면 석 달 정도는 생활할 수 있는데 (사장이) 주려고 하지를 않아요."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사는 윤경락(65)씨는 2005년 제본소에서 일하다 받지 못한 월급 180만원을 생각하면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밀린 임금은 2005년 4월부터 4개월치. 돈을 받으려고 소송까지 걸어 승소도 했지만 업체 사장 A씨는 여전히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일하고도 제때 월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뒤에는 추세가 더욱 뚜렷하다. 더구나 불황이 갈수록 심화됨에 따라 임금 체불은 사회문제로 비화될 것으로 보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804억여원(근로자 수 2만80명)이던 체불임금은 10월 836억여원(〃 2만2192명)으로 는 데 이어 11월에는 100억원 가까이 증가한 931억여원(〃 2만3657명)으로 집계됐다.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은 회사 사장에게 '읍소'하고 노동부에 진정도 내지만 돈을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끝내 법정까지 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업체의 '배째라' 식 행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윤씨는 "사장으로부터 '지금은 돈이 없으니 몇 달 후에 주겠다'는 말을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돈이 없다면 이해하겠지만 자기는 쓸 것 다 쓰면서 수금이 안 됐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기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중소 건설업체에 근무했던 김석주(가명)씨는 지난해 4월 퇴직권고를 받고 회사를 나왔다. 당시 사장 B씨는 "회사가 어려우니 월급과 퇴직금은 다음에 주겠다"고 했지만 회사는 몇 달 뒤 부도가 났고 2500만원가량의 밀린 월급과 퇴직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청소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박영자(56·여·가명)씨는 받지 못한 3년치 시간외 수당과 주말근무 수당 1000만원가량을 달라고 했지만 회사는 "줄 건 이미 다 줬다"며 맞서고 있다.

승강이는 지루하게 이어진다. 우선 노동부에 진정하면 체불임금의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기업의 체불이 인정되면 지급명령이 내려지지만 사용자 측이 불복하거나 이행하지 않으면 소송으로 번지기도 한다. 문제는 소송에서 이겨도 돈을 받기 힘든 사례가 많은 점이다.

윤씨는 최근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사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사장 A씨의 재산을 가압류할까도 생각했지만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게 막막하기만 하다.

김씨 역시 소송에서 이겼지만 회사가 회생절차를 밟고 있어 일부밖에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지급절차가 복잡해 노무사에게 맡길 때 수수료를 떼고 나면 정작 얼마나 손에 쥘지도 불확실하다.

임금 체불의 가장 큰 폐해는 피해자의 생계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점이다.

윤씨는 공공근로를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끼니를 때우는 김씨는 자식 넷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땀흘려 일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이들은 새해를 맞았지만 아직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는 심정이다.

강구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