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_김정일사망]/경제_일반_11

[경향신문] 한국, 세계 9번째로 무역규모 1조 달러 돌파

김철수02 2011. 12. 5. 22:58

 

 

 

 

 

 

 

 

 

 

 

 

 

 

경향신문 | 홍재원 기자

입력 2011.12.05 21:23

 



 


 

"다른 지역과의 물자교류는 미국 허가를 얻어야 한다."

 


미 군정이 1945년 10월 발표한 담화문이다. 해방을 맞았지만 한국은 물자교류, 재산의 반입·반출, 해외여행 등 모든 교역에서 미국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모두 빠져나가 산업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전쟁이 터졌다. 북한지역에 쏠려 있던 광업원료와 전기공급이 끊겼다. 한국은 해외 원조로 연명하던 가난한 신생 국가였을 뿐이었다.

 



 

 

 

미국 정부기관지인 '포린 어페어스'는 1960년 10월 "한국의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 1인당 국민총생산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만달러다. 한국의 경제적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50여년 후. 지식경제부는 5일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으로 무역규모 1조8억달러를 기록해 한국 연간 무역액수가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한국보다 먼저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나라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등 8개국뿐이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무역 1조달러 달성은 우리나라가 세계무역의 중심으로 진입했다는 의미"라며 "국민적 자긍심을 갖게 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달성 속도도 빨랐다. 1974년 무역규모가 처음 100억달러를 돌파한 이후 1988년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2005년 5000억달러에 도달했다. 우리보다 앞선 8개국은 1조달러 달성에 이르기까지 1000억달러에서는 평균 26.4년, 5000억달러에서 8.4년이 걸렸다. 하지만 한국은 23년과 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수출은 1962년 1차 경제개발계획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저렴한 임금과 유휴인력을 활용한 의류, 직물 등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수출 1위품목은 1962년 쌀(15.8%)에서 1970~1980년대엔 의류(24.6%)로 바뀌었다.

1970년대에는 전략산업을 키워 성장축을 형성하려는 '불균형 성장전략'이 나왔다. 1980~1990년대 첨단 장치산업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 1995년 반도체(14.1%)가 수출비중 1위로 뛰어올랐다. 올해 기준으로는 선박(10.3%), 석유제품(9.3%), 반도체(9%), 자동차(8%) 순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경제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1964년 1억달러에 그쳤던 수출액은 1977년 100억달러, 1995년 1000억달러를 돌파해 올해 세계 8번째로 5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던 한국이 지난해 기록한 실질 국내총생산은 1조176억달러로 세계 12위를 기록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을 62.2%로 분석했다.

 

 

 


<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