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_바다이야기]/교육_06

[스크랩] 아름다운 청년으로 가는 길

김철수02 2006. 12. 14. 10:22

 

 

 

그 징조는 벌써 한 두 달 전부터 시작이 되었었다. 사진 편집하는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난데없이 거의 벌거벗은 여자들이 확 달려든다. 거의 반사적으로 ‘어머 이게 뭐야’ 소리가 튀어나오고 그 소리가 조금 호들갑스럽게 들렸는지 영화 보던 큰 녀석이 무슨 일이냐며 내 등 뒤로 와 섰다.

‘이게 뭐냐? 니가 다운 받았어?’

‘아니 엄마. 이게 뭐야? 뭐가 잘못되었나보다. 지워 지워...’

그러면서 큰 아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그 사진들을 지우느라고 법석이다.

그때 벌써 감을 잡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군!


하지만 큰 녀석은 전혀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란 듯이 완벽하게 시치미를 뗀다.

극구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니 무조건 덮어씌울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무슨 중죄를 지은 것처럼 추궁을 할 일도 아니고 그 당시는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사실 말이 거의 벌거벗은 여자들이지 실사도 아니고 에니메이션 무슨 캐릭터같은 여자들이 수영복 따위를 입고 있는 그림이었으니 뭐 사실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게다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했고, 저 정도면 귀엽게 봐줄만하네 하고 가볍게 넘겼다.


사실 성에 관해 차오를 대로 차오른 호기심 주머니를 가진 큰 아이에게 어떻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시켜줄 것인가가 늘 고민이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특히 에이즈나 HIV 환자 문제가 심각한 곳이다 보니 남녀 성관계에 대한 교육에 관해서만큼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 이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 교실에서 배우는 것만으로 이미 청년의 몸으로 변해가고 있는 아이들의 그 치닫는 성에 관한 호기심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큰 아이. 내게는 아직 애기 같아 보이기만 하고 철딱서니 없고 저 아이가 무슨 성에 눈을 뜨랴 싶지만 그건 그저 엄마의 바람일 뿐 내 아이는 이미 그런 면에 있어서 내 손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 사건 이후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지켜보려고 했지만 특별하게 눈에 띄이는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가 제대로 진짜 제대로 나한테 걸리고야 말았다.


우리 큰 아이보다 한 학년 더 위인 친구 아들이 자주 와서 놀고 가끔 자고 가곤 한다. 워낙에 친한 친구의 아들이고 가족들끼리 잘 알고 지내서 둘이 붙여놓아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녀석이다. 그 아이가 오면 작은 아이까지 곁다리로 붙어 집안을 발칵 뒤집으면서 놀곤 한다. 아무튼 근래 그 녀석이 몇 번 와서 자고 가곤했는데 하루 그 녀석이 다녀간 다음날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그 녀석들이 돌아다닌 사이트를 찾아냈다.


딱히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엿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이들 방에 있는 컴퓨터에서 차마 우리 아이들이 보았다고는 믿고 싶지 않은 사이트 몇 개를 발견했다. 혹시나 싶어 다른 방에 있는 컴퓨터도 열어봤더니 역시나 마찬가지로 너무나 원색적인 포르노 사이트 몇 개가 잡혀 있었다.

그때의 그 놀라움. 내 아이는 설마...그렇게 믿고 싶었던 어리석은 생각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할 것인가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일단 아이가 돌아다닌 사이트 목록을 다 지웠다. 그리고는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한참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다운을 받고 설치는 잠시 미루고...

아이에게 짐짓 모른 척. 엄마가 전혀 자기의 호기심서핑(?)에 관해 모른 척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진짜 갈등스러웠다.


사실 아이들이 말귀 알아듣는 나이, 아주 어릴 때부터 난 형식을 갖추진 않았지만 아주 구체적이기까지 한 성교육을 시켰다고 생각한다.

여자와 남자. 신체와 정신의 너무나 다른 차이점에서부터 아이를 만드는 것. 낳는 것. 왜 남자나 여자나 스스로의 몸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지, 그리고 가장 주안점이라면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 여자를 지켜주는 것이 남자가 할 일이라는 어설픈 패미니스트 엄마의 설교까지 덧붙이곤 했었다.

작은 애는 그 영향 때문인지 최근까지도 엄마가 침대에 누워있으면 여자는 아이를 낳아야하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배가 따뜻해야 한다면서 이불을 덮어주곤 했었다.


아무튼 성교육 분야에 있어 막힌 사람이라는 소리 들어서는 애들에게 좋은 영향일 수 없다는 생각이었고 나름대로 트인 엄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큰 아이는 6학년 때 첫 몽정을 하면 큰 파티를 해달라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큰 아이의 첫 몽정은 엄마 아빠도 없는 남의 나라 남아공에서 혼자 해결했던 모양이다.(그때는 아이들 둘만 남아공에 보내놓은 상태였다.) 나중에 남아공에 가족 모두 합류하면서 그 이야기를 물었더니 이미 큰 아이는 그런 문제에 대해 엄마에게 쑥스러운 시기가 되어있었다.


한참 뭐든지 호기심 강한 나이에 피부색 다른 아이들과 섞여 살다보니 그런 호기심을 해결하는 것이 한국처럼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머리 굳은 어른 생각일지 모르지만 아무리 말이 통해서 나고 자란 나라의 말이 아닌 다음에야 애들이라고 어디 속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싶은 노파심이 생기곤 한다. 그런 우려는 성에 관한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게다.


지금 나이 또래에 지들끼리 히히덕거리면서 공유해야할 많은 정보(?)가 사실 문화 다른 곳에 살면서 많이 차단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차단된다는 것이 어쩌면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또래에 있어 그 부분만큼은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막상 그런 우려와 달리 우리 아이가 또래 친구와 함께 이 엄마가 잠든 사이 나로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할 엄청난 수위의 포르노 사이트를 헤엄치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충격은 조금 충격이다.

아직도 밤에 무섭다고 베게를 들고 엄마 방으로 쳐들어오고 지 동생이랑 노는 것 보면 아빠보다 훨씬 더 커진 키가 부끄러울 정도로 유치하게 노는 아이인데...그 아이가 그렇게 왜곡된 음란물에 노출되어도 좋은지 머리가 조금 복잡하다.


처음 충격을 조금 가다듬고 음란물 방지 프로그램 다운받아 놓고 이런 저런 생각으로 정리가 잘 안될 때 쯤 다행히 큰 녀석과 둘이 있을 시간이 허락되었었다.

‘너 져스틴이랑 밤에 안자고 뭐하고 노냐?’

‘그냥 게임하고 음악 듣고 이야기 하고 그러지 뭐.’

‘너 포르노 사이트 너무 많이 돌아다니면 나중에 연애 못한다. 조심해라. 그건 장사 속으로 만든 거라서 엄청나게 과장된 거야. 그런 거 너무 많이 보면 실제로 시시해질 수도 있을 걸?'


한참 돌려 말하기보다 단도직입적으로 쏴버렸다.

처음에는 의아하던 큰 아이도 얼굴이 조금 벌게지더니 그냥 술술 풀어놓는다.

‘어떻게 알았어? 엄마?’

‘너 귀신은 속여도 엄마는 못속이는 거 몰라? 엄마가 모르는 게 있냐? 그리고 엄마가 그런거 가지고 뭐라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사실 이 부분은 조금 과장^^ 당연히 뭐라 그러지...)

그리고는 그 말 뒤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네 나이 때 그런 호기심은 너무 당연한 거다. 하지만 너무 과장된 것은 안 좋은 거다. 너는 그렇다고 치고 동생에게 그런 건 아직 너무 충격이다. 조심해야 한다. 보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 지나치게 보는 건 조심해라. 등등...

평소에 트인 엄마이고 깨인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지가 않았다. 그저 교과서적인 이야기 밖에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걱정스럽다. 내 자식만큼은 세상에서 걱정하는 것을 피해가겠지 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없고 그렇게 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이제 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나는 내 아이들. 이제는 단지 내 아이로서보다 남자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 제 나이 또래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것들은 다 겪으면서 자라길 바란다.


어쩌면 내 아이가 정상적인 남자로 성장하고 있으니 대견스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 아빠 역시 모른척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다 남자로 자라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의 단순한 호기심을 풀기에는 너무 엄청나게 과장되고 왜곡된 쏟아지는 음란물 사이트들. 아름답고 소중한 성을 지나치게 왜곡되게 받아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난 내 아이를 믿는다. 어린 아이에서 성년으로 커가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우리 아이라고 해서 그런 통과의례를 벗어나 가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 과정을 지나서야 비로소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시기가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어도 막상 닥치고 보니 조금은 당황스러운 것. 그리고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난감한 것 등등의 복잡한 감정이 있을 뿐이다.

 

다운 받아놓은 프로그램은 어쩌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한번 알아들을 만큼 이야기가 되었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 아이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날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싶다.



출처 : 사는 이야기
글쓴이 : 유 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