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기사입력 2008.12.16 11:52
최종수정 2008.12.1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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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폐암 선고를 받은 뒤 그가 위중하다는 소식은 대학로 연극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광정은 자신의 병세를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박광정은 임종을 예감한 최근까지도 소속사 식구들에게 입단속을 부탁하며 자신의 병세를 팬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 박광정이 15일 오후 9시42분 폐암 치료를 위해 입원 중이던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연극에 대한 열정도 폐암이라는 무서운 병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자신의 능력을 한창 발휘할 나이에 박광정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내려와 영원히 눈을 감은 것이다.
박광정은 대중들에게 환호를 받는 스타도, 연예인도 아니었다. 연기에 대해 사명감을 지닌 배우였고 연극을 사랑한 연출가였다. 그런데도 박광정은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이러한 박광정에 대해 대학로 연극인들 사이에서는 배신자라는 말이 오가기도 했다. 연극의 순수성을 저버리고 인기에 영합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해 4월 중순 대학로에서 박광정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가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개봉을 앞두고 갖은 인터뷰였다.
박광정과 처음으로 나눈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군대에 관한 것이었다. 박광정은 "영화 '마지막 방위'에 출연한 것 때문에 방위병 출신이라고 오해를 받는다"며 내심 억울한 심경을 비췄다. 그는 1983년 대구 2군 사령부 수송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했다고 밝혔다. 형제 중에 군인이 많다는 것도 강조했다.
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광주. 1983년 경상북도 대구로 자대배치를 받은 전라도 신병의 군생활은 고되었다며 스치 듯 말하기도 했다. 이어 박광정은 "그 시절의 경험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양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박광정은 졸업 무렵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박광정은 이내 촉망받는 주연배우이자 주목받는 연출가로 자리를 잡았다. 대학로에서 전통을 자랑하는 연우무대 출신의 박광정은 연극 관련 시상식마다 늘 주인공이었다. 그렇지만 박광정은 연극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TV드라마와 영화에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인터뷰 당시 박광정은 이에 대해 "90년대 중반까지는 대학로에서 몸 팔러 다닌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생계를 위해 돈이 되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이 대학로의 가난한 배우들 사이에서는 자존심을 판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박광정은 92년 초반 '명자 아끼꼬 소냐'로 영화에 첫 발을 딛었고,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드라마에도 조연으로 얼굴을 비췄다. 그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단박에 감독들과 PD들의 눈에 들었다. 일거리가 늘었고 그는 아낌없이 대중의 부름에 응했다. 박광정은 영화와 TV 출연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극단 파크를 세워 후배 배우들과 연극 무대를 지켰다.
박광정에게 "왜 동료 연극인들에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영화와 TV에 출연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영화와 TV에 계속 출연한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 돈을 받아서 극단에 있는 후배 배우들에게 월급을 줘야 한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박광정은 그 말을 꺼내면서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연극계 사람들에 따르면 박광정은 권해효, 최종원과 함께 대학로를 근거지로 삼아 영화와 드라마를 자유롭게 넘나든 1세대 배우로 손꼽힌다. 송강호나 설경구 황정민 등 대학로 출신의 연극배우들이 다른 장르에서 각광을 받게 된 데에는 박광정의 공로가 컸다고 한다. 그가 대학로 배우로서 다른 장르에 출연하며 물꼬를 틔웠기 때문이다.
당시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박광정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와 영화를 꼽아달라고 청했다. 그는 90년대 후반 방영됐던 KBS 성장드라마 '학교' 시리즈와 1997년 송능한 감독의 '넘버3'를 꼽았다.
영화 '넘버3'에서 그는 3류 시인 랭보로 분해 불사파 두목역을 맡은 송강호와 함께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를 꼽은 것은 의외였다. 박광정이 '학교'를 통해 특별히 안방극장에서 주목을 받거나 인정을 받았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학교'냐?"고 묻자 박광정은 "대본 자체가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그려 좋았다"며 "그때 학생주임으로 출연하면서 신인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는데 그 신인들이 어느새 주역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게 돼 보람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박광정과의 당시 인터뷰는 마무리 됐다. 박광정은 "시간이 있으면 더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텐데 서울연극제 준비로 배우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나중에라도 인터뷰를 다시 하자"고 인사를 건넸다.
이후 박광정의 모습을 TV 드라마 '뉴 하트'와 '누구세요'를 통해 보았고, 암 투병 소식이 이어졌으며, 끝내 부고기사를 쓰게 됐다.
영화로서는 그의 유작이 될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 소심하고 유약하지만 끝내 착했던 남자 태한의 대사를 빌어 고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다.
"하늘에서는 복 받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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