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 기사입력 2009.01.24 15:36
[머니투데이 여한구기자]
[[위기의 시대-패러다임을 바꾸자] < 4 > 학벌에서 기술 시대로]
#물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김모씨(37)는 최근 서울 강서구청의 환경미화원 채용에 응시했다 탈락했다. 경제위기로 취업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김씨는 씁쓸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지난 2007년초에는 서울북부지검 관용차 운전기사(기능직 10급) 채용에 석사 학위 소지자가 지원해 화제가 됐다. 그 역시 '경력 부족'으로 탈락했다.
#올초 서울 신림동 모 고시원의 좁은 방에서 45살의 고시원생이 숨진지 열흘이 넘어서야 발견됐다. 그는 중·고교 때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였다. 대학도 서울의 명문대 법대를 나왔지만 사시 합격의 길은 험했다. 그는 25년간 법조인이 되려 애썼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 졸업생 중 84%가 대학에 진학하는 '학력 과잉'의 시대가 낳은 안타까운 장면들이다. 무조건 대학은 졸업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탓에 대졸자들은 넘쳐나는데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는 턱 없이 부족하다.
'양질의 일자리'에 속하는 대기업과 공기업, 공무원 입사시험 때가 되면 취직 경쟁은 전쟁만큼 치열해진다. 웬만한 입사시험은 수백대 1의 경쟁률이 기본. 최악의 경제위기가 우려되는 올 2월엔 대학 졸업 예정자 55만6000명 중에서 55%만이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돼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백수 대졸자'는 넘치는데 산업현장에는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부족한 인원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7만2000명에 달했다. 내국인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건설업과 소규모 제조업 등 3D(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은 이미 외국 근로자들로 채워져 있다.
이같은 인력 수급의 불일치는 어떻게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학벌이 밥먹여 주는' 시대가 지났음에도 유독 학벌 집착이 심한 '한국병'을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법으로는 기술 전문가가 우대받는 풍토 조성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 본부장은 "기술교육을 받고 노동시장에 뛰어들어도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력 공급 측면에서 교육체계 개편이 필요하고 인력 수요 측면에서 기업 관행의 변화, 사회 전체적으로는 직업에 대한 인식 전환 등 3박자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교육과정에서 제도 변화가 중요하다. 과거 기술인·전문인 양성의 요람이었던 공업고등학교와 상업고등학교조차 '정보화고등학교' 등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다른 일반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대학 진학의 전단계로 여겨지고 있다.
기술 전문 고등학교의 대학 진학률이 평균 70~80%에 이르니 고교에서 체계적인 기술인 양성이 이뤄지기가 어렵다. 박성희 노동부 직업능력정책과장은 "직업 훈련과 진로 지도를 강화해 적성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대학에 무조건 진학하는 관행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보다는 수요 측면에서의 반성이 더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등학교에서 기술을 익힌 기술인들이 적절한 보수를 받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직장이 마련돼야 한다.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이 아닌 직장에 다니면서 직업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국가의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명문대를 졸업해도 십수년간 직장을 얻지 못해 '백수생활'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현실을 부모들부터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지적이다. '내 아이는 달라'가 아니라 '내 아이도 혹시…'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이다.
재기 발랄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직업과 관련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개인의 적성과 개성이 강조되면서 '명품' 미용사나 요리사 등 기능직을 일찍부터 꿈꾸며 진로를 개척해가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정부도 고급 기능인을 길러내기 위한 마이스터고교와 폴리텍대학을 집중 육성하고 기능과 품질 명장 외에 '애니매이션 명장'과 같은 서비스업 명장도 선발키로 하는 등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능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한 직업능력개발사업 참여자도 2002년 7655명에서 지난해 1만1650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1만6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폴리텍대학의 취업률은 2007년과 2008년 연속으로 90%를 넘었다. 취업자 중 대기업 입사 비율은 지난 2007년에 15%, 2008년에는 12%였다.
한국노동연구원 김 본부장은 "조금씩 변화가 보이는 만큼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관점에서 학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풍토와 인식을 바꾸려는 정책적,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한구기자 ha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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