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_바다이야기]/국제_일반_06

[한겨레] ‘체르노빌 20돌’ 재앙은 오래 계속된다.

김철수02 2011. 4. 3. 13:41

 

 

 

한겨레 |

입력 2006.04.20 16:31

   

 




 

[한겨레]


"과수원엔 따지 않은 과일들이 나무에 매달린 채 썪어가고 있었고, 가끔 멧돼지가 대로를 어슬렁거렸다. 자연은 인간이 떠난 도시를 접수한 것처럼 보였다."

 


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를 일으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근처의 거주금지 구역을 20년 만에 둘러본 독일의 주간지 < 슈피겔 > 온라인판 기사는 이렇게 묘사했다.

 



 

 

 

 

 

하지만, 그 지역을 아직도 점령하고 있는 것은 방사능이다. 1986년 4월26일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핵연료가 녹아내리면서 핵폭탄 수백개 분량의 방사능이 전세계로 퍼져나간 참사가 발생했다. 꼭 20년이 지난 현재, 체르노빌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방사능으로 인한 건강피해 규모는 얼마나 될까. 국제기구와 환경단체, 외국 언론사의 보도를 간추려 보았다.

 


◇사고 발생 경위와 소련 당국의 대처

토요일이던 1986년 4월26일 새벽,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는 출력을 낮추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실험을 망치지 않으려고 자동 안전장치를 꺼버렸다. 원전은 예기치 않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뒤 폭주해 대폭발과 화재가 일어났다. 이 원전은 소련이 개발한 흑연감속로(RBMK) 원전으로서, 서구 원전과 달리 격납용기가 없고 불이 잘 붙는 흑연을 감속재로 쓰는 형태였다.

냉각체계가 작동불능 상태가 되고 흑연이 타오르자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발전소쪽은 우선 소방대원을 투입해 노심의 불을 끄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30대의 군용 헬기 투입해 2400t의 납과 1800t의 모래를 퍼부었으나 역시 불을 잡지 못했다. 이 작업으로 노심이 덮히자 오히려 온도가 올라가 방사능 누출이 늘어났다. 5월1일 현장 상황은 심각했다. 발전소 건물의 기초가 붕괴될 위험에 놓였다. 만일 녹은 핵물질이 지하로 내려가 지하수와 접촉한다면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내부에는 핵폭탄 1천개 분량의 방사능이 쌓여있었다. 마침내 5월6일 소방대가 액체질소를 투입해 불길은 간신히 진압됐다. 사고 발생 후 열흘 뒤였다.

현장의 이런 긴박한 상황은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고농도의 방사능 구름이 퍼져나간 이웃 유럽국가들은 물론 원전 인근 지역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체르노빌 원전 근로자들의 주로 사는 프리피야트 시민들은 유난히 따듯했던 4월26일 야외활동을 즐기기 위해 대부분 밖으로 나와 있었다. 결혼식만 16건이 열렸다. 이날 새벽 2㎞ 떨어진 곳에서 세계적인 참사가 난 것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원전 주변 주민들, 사고 당시 '평온한 주말'...사고 36시간 뒤에야 소개령


이들에게 소개령이 떨어진 것은 사고 36시간 뒤였다. 소비에트는 노동자를 농민보다 더 사랑한 때문인지, 인근 지역 농민들은 며칠 뒤에야 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원전단지에서 110㎞ 남쪽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주의 주도 키예프 시민들은 머리 위에서 쏟아지던 방사능 전혀 모른 채 사고 닷새 뒤 메이데이 행사를 진행했다.

외부에서 사고를 처음 눈치챈 것은 스웨덴 과학자들이었다. 사고 이튿날 평사시보다 높은 방사능을 검출한 스웨덴은 바람방향을 역추적해 들어갔지만 소련은 방사능 누출을 부인했다. 스웨덴이 국제원자력기구에 대책을 촉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소련은 그날 밤 다섯 문장의 발표를 했다. '원전 1기가 손상을 입었고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세한 내용이 공표된 것은 방사능 누출이 거의 끝난 2주일 뒤였다.

< 유피아이 > 통신은 키예프의 소식통을 인용해 28일 2천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은 전세계로 타전됐다. 당시로서는 과장된 내용이었지만 아무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소련관영 < 타스 > 는 2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사고 직후 처리과정에서 과다피폭으로 사망한 소방대원과 원전 근무자 등은 39명이다. 원자력업계는 언론이 과장한다고 주장했다.

소련당국은 이런 규모의 재앙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사태를 과소평가했고 신속히 대처하지 못했으며 정보공개를 하지 않아 주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지역사회에 사고내용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공포에 빠졌다. 키예프는 유령의 도시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앞다퉈 아이들은 먼 친척이나 지인의 집으로 보냈다. 외부로 가는 기차마다 아이들로 가득찼다. 당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벨로루시 주민이던 크라프초프 알렉산더(59)는 국제 체르노빌 연구 및 정보 네트워크(ICRIN)에 실린 인터뷰에서 "우리 지역 당서기는 자기 딸들을 사고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몰래 보낸 사실 드러나 쫒겨났고, 자기 딸을 억지로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게 한 또 다른 간부는 모범을 보인 행동이라는 칭찬과 함께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사고 지역에 요오드 정제 일찍 뿌리지 않은 것도 '치명적 실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사고지역에 요오드 정제를 일찍 배포하지 않은 것이다. 몸속에 요오드가 충분하면 방사성 요오드 섭취를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사고지역은 애초에 요오드 결핍지역이어서 방사성 핵종을 더욱 잘 흡수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실수는 나중에 이 지역에서 갑상선 암의 대발상을 초래했다.

방사능 오염실태가 처음 공개된 것은 사고 3년 뒤의 일이었다. 88년까지는 개인이 방사능 측정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런 태도는 대중들의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이런 재앙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데도 이를 가리기 위해 영웅주의를 고취했다. 이는 무모한 오염제거 활동을 불렀고 대규모 피폭사태를 불렀다. 1989년까지 현장정리에 동원된 군인 등은 모두 80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30만명은 기준치의 500배 이상인 방사선에 피폭됐다.

 


◇피폭과 환경오염

사고 뒤 첫 열흘 동안 방사성물질들의 대부분이 누출됐다. 여기엔 요오드,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 40여 종의 핵종이 들어있었다. 화재로 뜨거워진 가스가 핵물질을 1500미터 상공까지 밀어올린 뒤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영국, 스칸디나비아 등 유럽의 14개 나라로 확산됐다.

사고장소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방사능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체르노빌 근처보다 기껏 아이를 보낸 곳이 더 높은 방사능 농도를 보이기도 했다. 스웨덴·영국 등 북구에도 고농도의 낙진이 떨어졌다. 영국 중서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는 아직도 당시의 낙진 때문에 목양이 금지되고 있는 지역이 있을 정도다. 순전히 당시의 기상상태에 의한 우연의 결과이다.

사고가 난 지 20년이 되도록 인명피해의 전모조차 논란거리인 것은 체르노빌 사고의 비극적 특징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해 세계보건기구, 세계은행 등이 참여한 '체르노빌 포럼 보고서'를 통해 이제까지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50명이고 향후 4천명이 추가로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건강피해는 처음 걱정했던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원자력산업계가 즐겨 인용하는 유엔의 공식 통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환경단체와 체르노빌 구호단체는 물론이고 독립적인 학자들로부터 피해를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18일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건강피해에 관한 새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27만 건의 암이 발생할 것이고 그 가운데 9만3천 건은 치명적인 종류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위 있는 여러나라의 전문가와 벨로루시·우크라이나·러시아의 국가 통계자료에 근거한 조사결과이다. 그러나 유엔기구의 또다른 전문기구는 다른 수치를 내놓았다. 세계보건기구에 딸린 국제암연구기구(IARC)는 최근 체르노빌 사고로 유럽 전체에서 오는 2065년까지 1만6천명이 갑상선암에, 2만5천명이 다른 암에 걸릴 것이며 그 가운데 1만6천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갑상선암의 3분의 2와 다른 암의 절반은 사고 인접지역인 벨로루시·우크라이나·러시아 지역에서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인접지역인 벨로루시 갑상선암 사고 이후 30배나 높아져

이런 시각차는 방사능에 노출된 뒤 암이 발생하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는데다 어느 수준의 방사선에 피폭돼야 암에 걸리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주로 빚어진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체르노빌의 정확한 희생자 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적어도 사고 뒤 30년이 지나는 2016년까지 전체 암 사망자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벨로루시·우크라이나·러시아 등 사고 인접지역 주민들의 건강이 악화됐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이 지역 어린이들의 갑상선암 빈발은 심각한 문제다. 벨로루시에서 이 병의 발생률은 사고 뒤 30배나 높아졌다. 특히 오염이 심한 고멜 지역에서는 어린이의 3분의 1이 결국은 갑상선 암에 걸릴 것으로 세계보건기구는 내다봤다. 그 숫자는 5만명이 이른다. 현재까지 적어도 1800명의 벨로루시 어린이들이 갑상선 암에 걸렸다. 그 숫자는 10년 안에 8천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유엔개발계획은 추정했다. 또 벨로루시에서 91년부터 갑상선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독일 전문가 에드문트 렝펠더 교수는 10만명의 어린이에게서 갑상선 암이 새로 생길 것이라고 경고한다.

주민이 받는 건강피해가 암 발병만은 아니다. 면역체계와 내분비계통의 손상, 심혈관 질환, 정신병, 염색체 이상, 태아기형 빈발, 노화 촉진 등이 보고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사고현장 뒷처리에 동원됐던 작업자를 조사한 결과 정상보다 5~11년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재 방사능에 의해 고도로 오염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500만~8백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건강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모두 35만명에 이르는 이주민의 사회적·경제적 충격도 적지 않다. 고향을 강제로 떠났거나 가족, 친지, 친구와 헤어져 살아야 하는 고통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사고 뒤 소련 연방이 붕괴되면서 안정된 복지시스템이 사라진 것도 큰 손실이다. 자신의 건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늘 도사리고 있다.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피폭자와 결혼을 꺼리는 사회적 낙인도 많은 이들을 아프게 만든다.

 


◇환경오염.....앞으로의 과제

사고 열흘 뒤 당국은 사고원전으로부터 반경 30㎞ 안에 살던 주민 13만명을 외부로 이주시켰다. 현재까지도 방사능으로 심하게 오염된 이 구역 안 76개 마을에는 특별한 허가 없이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한다. 하지만 노인을 중심으로 800여명이 들어와 산다. 암이 찾아오기 전에 늙어 죽을 가능성이 큰 이들이다. 이들에게는 외부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식품을 공급하고 정기검진을 해 준다. 통제구역 숲에서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노동자 4천여명은 주요한 통제구역 주민이다. 만일 산불이 나 나무에 농축된 방사능이 구름을 타고 외부로 유출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도처에 널려있는 핵폐기물 처분도 큰 문제다. < 비비시 > 인터넷판은 현재 통제구역 안에는 사고 뒷처리에서 발생한 1백만t 이상의 핵폐기물이 버려져 있다고 밝혔다. 이들을 묻은 매립지 460곳은 확인됐지만 다른 500여개는 내용물은커녕 정확한 위치도 모르는 상태이다.

사고가 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일부 핵종에 의한 방사능은 거의 변한 게 없다. 특히 사고때 다량 유출된 방사성 핵종인 세슘-137은 방사능이 반으로 줄어드는데 30년이나 걸려, 남한 면적의 2배를 오염시키고 있다. 낙진의 70%가 떨어진 벨로루시는 사고 당시 국토의 22%가 세슘에 오염됐지만, 20년이 지나도 오염지역은 1%포인트밖에 줄지 않았다. 세슘은 깊이 5㎝ 이내의 토양에 몰려 있어 식물 뿌리를 통해 먹이사슬로 편입된다. 또 숲은 방사성물질의 저장고 구실을 한다. 딸기류, 버섯, 고사리 등은 특히 방사능 오염이 심한 식물이다. 특히 토양의 양분이 부족한 곳에서는 필수양분인 칼륨과 비슷한 세슘이 다량 식물에 흡수된다. 딸기나 버섯을 따 먹거나 오염된 건초와 풀을 먹은 가축의 고기와 우유는 주요 오염원이다. 당국에서는 오염되지 않은 건초와 방사능을 배설하도록 하는 사료 첨가제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국영농장 농산품에 비해 자기가 키워 먹는 개별농장의 식품에서 높은 오염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불법 사냥과 낚시에 대한 규제가 철저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사고지역을 상류로 두고 있는 우크라이나 강은 다량의 방사능으로 오염됐다. 특히 물이 정체되는 호수의 퇴적층은 오염이 심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여전히 물고기를 잡아먹는 사람들이 있다. 방사능 오염으로 농사에 지장을 받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씨앗이 잘 트지 않거나 광합성 능력 저하, 돌연변이율 증가 등이 보고된다.

 

 


< 한겨레 >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참고자료 >

국제 체르노빌 연구 및 정보 네트워크(http://www.chernobyl.info/index.php)

그린피스 인터내셔널(http://www.greenpeace.org/international/)

< 비비시 > 뉴스 인터넷판(http://news.bbc.co.uk/1/hi/sci/tech/default.stm)

< 슈피겔 > 인터넷판(http://service.spiegel.de/cache/international/0,1518,,00.html)